“풍등 때문” 경찰 발표에도 풀리지 않는 '고양 저유소 화재' 의문점

2018-10-09 21:00

풍등 날린 외국인에게 대형화재 모든 책임 지울 수 있나?
전문가 “유증기 환기구에 불티 들어가면 꺼지는 게 원칙”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경찰 관계자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된 풍등과 동일한 제품을 공개하고 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 이하 연합뉴스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경찰 관계자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된 풍등과 동일한 제품을 공개하고 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 이하 연합뉴스

(고양=연합뉴스) 우영식 기자 =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 대한공유관공사 경인지사에서 발생한 휘발유 저장탱크 화재와 관련해 경찰이 스리랑카인 A(27)씨를 중실화 혐의로 입건하고 9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A씨가 화재 발생 22분 전 300여m 떨어진 인근 공사장에서 풍등을 날려 휘발유 저장탱크 10여m 지점에 떨어지게 해 불이 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가 날린 풍등이 휘발유 저장탱크 인근 잔디에 떨어진 뒤 잔디가 불에 타 불티가 휘발유 저장탱크의 유증기 환기구에 들어가며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증거자료로 A씨가 풍등을 띄우는 장면, 풍등이 잔디에 떨어진 뒤 흰 연기와 함께 불타는 장면, 이후 탱크가 폭발하는 장면 등이 담긴 1분 41초짜리 CCTV 영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 발표에도 풍등을 날린 A씨에게 266만ℓ의 기름을 태워 43억원의 피해가 난 휘발유 저장탱크 화재의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풍등이 유일한 화재원인인가?

경찰 수사 발표 등을 볼 때 현재까지 화재의 원인이 될만한 것은 A씨가 날린 풍등 밖에는 없다.

당일 탱크 운영을 안 했고 작업도 없었다. 또 인화성이 강한 시설이라 휘발유 저장탱크 내에서 전기 스파크를 일으킬 만한 장치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 날아가도록 제작된 풍등은 원칙적으로 연료가 완전히 연소, 불이 꺼져야 지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불이 붙은 채 추락하기는 어렵다. [https://youtu.be/TkwYhZ40-cc]

그러나 풍등으로 간혹 산불이 발생해 지난해 12월 풍등 등 소형 열기구에 대한 사용 제한명령이 포함된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화한 것을 보면 풍등에 의한 화재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한다.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지난 5일 오후부터 6일 오전까지 고양지역에 90㎜가량의 비가 와 잔디가 젖어 있어 불이 붙었을까 하는 의혹이 있었으나 경찰이 공개한 CCTV 영상에 탱크 주변 잔디가 흰 연기와 함께 검게 불타는 장면이 있다.

A씨가 날린 풍등이 잔디 화재의 단초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는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에 대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경찰이 공개한 CCTV에서 A씨가 날린 풍등이 저유소 쪽으로 떨어진 뒤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는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에 대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경찰이 공개한 CCTV에서 A씨가 날린 풍등이 저유소 쪽으로 떨어진 뒤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

▲잔디밭 불이 폭발로 이어졌나?

잔디밭에 불이 붙었다고 이것이 휘발유 저장탱크에 옮겨붙어 폭발과 함께 대형화재로 커졌는지도 의문이다.

그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영상은 없으며, 설령 그 불씨로 대형화재가 났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온전히 A씨가 져야 하는지도 따져볼 대목이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풍등이 떨어진 잔디에서 연기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폭발사고 18분 전인 7일 오전 10시 36분이다.

유류 저장탱크가 있는 곳에만 무려 46대의 CCTV가 비추고 있었으나 당시 근무 중이던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직원 6명은 폭발음이 들리기 전까지 화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송유관공사의 방재시스템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찰이 불티가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한 유증기 환기구에는 '인화방지망'이 설치돼 불씨가 들어오면 곧바로 꺼지는 것이 원칙이다.

인세진 우송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유증기 환기구에는 화재를 막기 위한 시설인 인화방지망이 설치돼 있어 불씨가 들어와도 꺼지도록 하는 장치가 있다"며 "인화성 물질이 많은 공장이나 주유소 기름 저장탱크에도 설치된 시설"이라고 말했다.

인 교수는 이어 "유증기 환기구에 불씨가 들어가면 곧바로 대형 폭발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막는 장치가 필수"라며 "만일 불씨가 환기구로 들어가 폭발을 일으켰다면 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저유탱크는 문제없나?

이번 화재를 보는 많은 시민들은 불이 훨훨 타오르는 탱크 옆에 다른 저유탱크들이 붙어있다시피 한 것에 많이 놀랬다.

불이 옮겨붙어 연쇄폭발이 나면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 교수는 17시간 동안 휘발유 저장탱크가 불에 타며 고온의 열기를 내뿜었음에도 20∼25m 떨어진 인근 휘발유 저장탱크가 무사했던 것과 관련해 "유류 탱크마다 60㎝ 두께의 콘크리트 방화벽이 있어 섭씨 300도까지는 화재에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다"며 "소방관들이 진화하면서 인근 탱크로 번지지 않도록 물을 뿌려가며 온도를 낮췄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300도 넘게 온도가 올라갈 수도 있고 혹시라도 기상이 안좋아 헬기 등의 진화작업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떤 대비책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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