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요새 다시 흥하긴 했죠"
"예전엔 여자 팬밖에 없었는데 요새는 남자 팬들이 많아졌어요. 팬도 어려졌고"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일본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CJ E&M이 주최하는 한류 페스티벌 '케이콘 재팬(KCON JAPAN)' 행사가 열렸다. 워너원, 세븐틴, 트와이스 등 한국 가수들이 총출동한 이번 행사에는 한류팬 6만 8000여 명이 모여들었다.
기자는 13일 오후 2시쯤 현장을 찾았다. 메인 행사인 '엠카운트다운' 공연은 오후 7시 시작이었지만 행사장 주위는 사전 행사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공식 '굿즈'를 사고 파는 이들도 많았다.
이날 출연진은 워너원, 펜타곤, 모모랜드, 우주소녀 등 일본 활동이 비교적 적은 그룹이 많았다. 한국에서 일본을 찾은 이들이 대다수가 아닐까 추측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행사장 주변을 채운 이는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한류가 끝났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신한류', '제3의 한류' 이야기가 한국 언론들 호들갑이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일본에서 한류가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한류를 소비하는 주체인 일본인들 생각이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물었다.
13일 '케이콘 재팬'을 찾은 일본인 30명에게 "왜 다시 한류가 인기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10대 여성부터 50대 여성, 남성 팬까지 다양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한류 열풍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날 나온 대답 중 흥미로웠던 반응을 정리해봤다.
◈ 역시 대세는 트와이스
이날 만난 일본 사람들 중 트와이스를 언급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일본인 멤버(모모, 미나, 사나)가 있어서 다른 해외 아티스트에 비해 친근했으며 팬이 되기 쉬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트와이스에 일본인 멤버가 들어있어서? 트와이스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 21세 여성
"트와이스가 일본인 멤버가 있어서일 것 같아요. 그때부터예요. 트와이스가 나왔는데, 그 안에 일본인 멤버가 있어서. 거기서부터 점점 (한류가) 퍼진 것 같아요" - 10대 여성
"트와이스에 일본인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친근해요" - 10대 남성
"트와이스 힘이 크죠. 일본인이 3명이나 있고, NHK '홍백가합전'도 나왔고요. 국민적인 방송이니까요" - 50대 여성
"트와이스부터? 일본 멤버가 있는 그룹이 늘어서, 일본에서 활동하는 그룹이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한국 그룹들이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해서요" - 10대 여성
"트와이스가 'M스테(일본 인기 음악방송인 TV 아사히 '뮤직 스테이션' 애칭)'에 나와서 그런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케이팝 가수가 'M스테' 나온 게 아마 몇 년 만일 거예요" -18세 여성
◈ 방탄소년단, 미국에서만 잘나가는 게 아니다
방탄소년단으로 한류를 접하게 된 어린 일본 팬덤도 많았다. 북미에서 얻은 인기에 비해 덜 조명된 감이 있지만, 방탄소년단은 데뷔 초부터 꾸준히 일본 활동을 해왔다. 한국에서 인기가 치솟던 시기와 비슷하게 일본에서도 반응이 왔다.
"확실히 요새 다시 인기예요. 저는 2년 전쯤 부터 방탄소년단을 좋아했는데... 아마 춤을 잘 춰서? 일본 가수랑 비교하면 한국은 춤도 노래도 신경을 쓰는 느낌이에요" - 16세 여성
"트와이스랑 방탄소년단 아닐까요? 트와이스랑 방탄소년단이 한국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동시에 일본에 진출을 한 게 큰 것 같아요" - 18세 여성
"저는 예전부터 한류를 계속 좋아했는데요, 진짜 어렸을 때부터... 아마 방탄소년단이 일본 활동에 힘을 주기 시작해서인 것 같아요" - 10대 여성
◈ 한류도 다단계? 잡식성 일본 팬들
일본인은 한 그룹만 좋아하기보다 여러 그룹을 동시에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한 그룹으로 시작해 같은 소속사 가수나 다른 한국 가수 팬이 되는 경우도 많으며, 이를 '다단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특성도 한류 재점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트와이스, 방탄소년단 등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하며 자연스럽게 다른 한국 그룹도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트와이스 같아요. 저도 최근에 한국 가수를 좋아하게 됐는데, 역시 '입덕'은 트와이스였어요. 사나가 좋아서요. 요즘엔 워너원이 좋아서 오늘도 워너원 보러 왔지만요. 아마 트와이스를 시작으로 해서 'MAMA' 같은 거 보고 여러 그룹을 알게 된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방탄소년단이나..." -21세 여성
"새로운 그룹이 여러 팀 나오고 있잖아요. 그 덕분일 것 같아요. 특히 트와이스는 힘이 커요. 핸드폰 CF에 나오기도 하고. 여자 팬이 정말 많아요. 남자 팬도 많지만. 소녀시대가 몇 년 전에 인기가 있었는데 그 대를 이은?" -57세 여성
"최근에 한국에서 새로운 그룹이 많이 나왔잖아요. 그 그룹이 일본에 건너와서, 바로 인기를 얻고 그런 경우가 많았죠. 워너원도 그렇고, 세븐틴도. 일본에서 작은 행사도 많이 하거든요. 한국 신인이 와서 작은 행사라도 하면 거기서 팬이 붙어서 점점 인기가 많아지죠. (...)
한국 팬들은 한 그룹만 좋아하잖아요. 일본은 좀 달라요. 방탄소년단도 좋아하고, 워너원도 좋아하고, 세븐틴도 좋아하고. 여러 다리를 걸친다 해야 하나, 잡식성이 많아요.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아마 오늘 행사도 그럴 거예요. 워너원 팬도 있겠지만 다른 그룹을 좋아하는데 워너원 보러 온 팬도 있을 거예요" - 30대 여성
"트와이스 아닐까요. 트와이스 덕분에 케이팝을 알고, 거기서 또 여러 그룹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트와이스 팬인데 오늘은 모모랜드 보러 왔어요" - 19세 남성
◈ 10대 여성부터 남성까지 포섭...다양해진 한류 팬
드라마 '겨울연가' 인기로 막 한류가 시작됐을 때에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중년 여성층이 한류 팬 대다수였다. 한류 팬은 동방신기, 빅뱅 등을 중심으로 한 한류 2세대를 거치며 한 층 어려졌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10대, 20대로 더욱 어려졌다.
트와이스가 등장하며 소녀시대, 카라 이후로 잠잠했던 일본 남성 팬들도 부쩍 늘어났다. 한류 팬층은 보다 어려졌고, 다양해졌다.
"예전엔 연령대가 높은 팬층이 많았는데 요새는 어린 친구들이 한국 가수를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요. 젊은 그룹이 특히 인기가 많아요. 트와이스나, 워너원도 요새 인기가 높아지고 있어요. 방탄소년단도 인기가 정말 대단하고요.
저는 '욘사마' 전부터 좋아했는데 지금 일본에서는 '3번 째 붐'이다, '제 3의 한류' 이런 얘기가 나와요. 1차가 '욘사마'고, 2차가 빅뱅이나 동방신기, 3차가 지금. 지금은 굉장히 젊어요" - 40대 여성
"요새는 남자들도 케이팝에 흥미를 가진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전에는 여자만 있었는데. 트와이스가 인기가 많아져서요. 일본인 멤버가 있기도 하고" - 18세 여성
◈ 음악과 사람이 좋다면 나라는 상관 없어 (군대는 상관이 있을 수도)
그냥 음악과 사람이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좋아했는데 그 사람이 한국인이었다는 얘기다. 최근 몇 년간 한일 관계가 나빴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했지만, 팬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그룹이 군 문제로 일본에서 활동하지 못했던 시기와 한일 관계가 나빴던 시기가 겹쳤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 신인 남자 배우가 괜찮은 것 같아요. 남주혁 씨나 임주환 씨... 박보검 씨나. 박보검 씨는 정말 대단해요. 정말 좋아요" -50대 여성
"음악 방송 같은 게 일본은 줄어들고 있는데 한국은 성장 중이라서... 계속해서 (한국 가수) 영상이 흘러들어오고 있어요. 일본 음악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한국 음악은 활기가 있어요. 방송을 보고, 듣는 동안 즐거워져요. 역시 음악 자체가 좋아서라고 생각해요" - 50대 여성
"저는 예전부터 계속 한류를 좋아했어요. 남편이 한국인이기도 하고요. 음악이 일본이랑 좀 다르죠. 일본 남자들이랑 한국 남자들이랑 좀 다른 것도 있어요. 신사적이고. 좀 달라요" - 40대 여성
"군대 문제도 있을 것 같아요. 딱 최근 2년 동안 유명한 한국 아티스트가 군대에 있었던 기간이 있으니까요. 그동안 다른 그룹을 좋아하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요?" - 30대 여성
"저는 계속 좋아했어요. 나라 문제는 나라 문제고 아티스트는 아티스트고. 계속 정말, 정말 좋아합니다" -39세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