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과 이혜리 씨 남친 있어요?” 대학 대나무숲 흥신소 글 '신상 침해' 논란

2018-04-26 14:00

대학생 정수현 씨는 지난달 페이스북 알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사와 관계 없는 자료 사진 / 이하 JTBC '청춘시대'
기사와 관계 없는 자료 사진 / 이하 JTBC '청춘시대'

"오늘 인문관 303호 5열에서 글쓰기 수업 듣던 여자분! 어깨까지 오는 갈색 머리에 흰색 라운드 티 입고 있었어요. 쉬는 시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들고 들어오는 걸 봤는데...너무 예쁜데 학과랑 이름을 몰라서 말을 못 걸었습니다. 혹시 남자친구 있어요? 친구분들 이거 보면 태그 부탁드려요"

대학생 정수현(가명·22) 씨는 지난달 페이스북 알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학교 친구들은 한 대나무숲 게시글에 정 씨를 태그했다. 친구들은 "수현이 인기 많네~"라는 댓글을 달았다. "네가 썼냐?"라며 정 씨를 놀리는 친구도 있었다.

정 씨는 수치심을 느꼈다. 수업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부담스러웠다. 외모 칭찬도 무섭게 느껴졌다. 글쓴이가 자신을 관찰하는 느낌을 받았다.

정 씨는 한동안 글쓴이가 언급한 '흰색 라운드 티'를 입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해당 건물을 피해 다녔다. 페이스북도 비활성화 상태로 바꿨다. 정 씨는 결국 해당 수업을 취소했다.

"ㅇㅇ과 김지원 씨! 어제 검은색 티셔츠 입고 후문 카페 골목 지나가는 걸 봤는데요. 옆에 있던 분 남자친구인가요?"

대학생 김지원(가명·23) 씨도 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 때문에 난처한 상황을 겪은 적 있다. 글쓴이는 김지원 씨가 다른 남자와 있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학과와 이름도 그대로 노출됐다.

김 씨는 남자친구가 있다. 함께 있던 사람은 남자친구가 아닌 학교 선배였다. 두 사람은 학교 일 때문에 회의를 하러 장소를 이동하는 중이었다. 남자친구는 그 글을 보고 김 씨가 다른 사람과 만났다고 오해했다.

김 씨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당사자 동의 없이 이런 글을 게시하는 방식이 불쾌하다"라고 말했다.

"어제 어디서 술 마시던 ㅇㅇ과 여자분 연락처 알 수 있냐. 어느 수업에서 본 적 있다. 이런 글도 올라온 적 있어요. 처음엔 재밌다며 웃어넘길 수 있었습니다. 근데 자꾸 글이 올라오니 부담스럽네요"

'대나무숲'은 페이스북에서 유행하는 대학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재학생들이 직접 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한다. 학생들은 익명으로 글을 투고할 수 있다.

일부 학교 '대나무숲'에는 개인을 저격해 신상을 묻는 글이 빈번하게 올라온다. 보통 상대방 외모를 묘사하며 호감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수강하는 과목, 아르바이트 장소, 자취방 위치 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글 말미에는 연락처나 연애 여부를 알려달라는 부탁이 들어간다. 적나라한 내용은 초성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이런 글은 상대방에 대한 자세한 신상 묘사 때문에 '흥신소 글'이라고도 불린다.

'흥신소 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김지원 씨는 일방적인 외모 평가나 신상 노출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상대방 동의 없이 외모를 품평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송평화(가명·21) 씨는 '흥신소 글' 때문에 놀림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송평화 씨는 "과에 워너원 멤버 옹성우 씨를 닮은 친구가 있다. 대나무숲에 주기적으로 옹성우 씨 닮은 분 누구냐는 글이 올라온다"라고 말했다. 송 씨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글도 있었지만, 장난도 많다"라고 밝혔다. 그는 "친구가 나중에는 화를 내더라"라고 말했다.

송 씨는 "아무리 칭찬이라도 장난으로 변질되면 부담스럽다. 프로필을 눌러 얼굴을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라고 밝혔다.

'흥신소 글'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대학생 강지수(가명·21) 씨는 '흥신소 글' 도움을 받고 연애를 시작했다. 애인은 강지수 씨를 수업에서 만나고 호감을 느꼈다. 그는 대나무숲에 강지수 씨 외향을 묘사하며 연락처를 알고 싶다는 글을 썼다. 강 씨는 "저격 글을 받았을 때 부담스럽긴 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라며 "새로운 연애 풍속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최현석(가명·20) 씨도 "이런 글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최 씨는 '전남대학교 대나무숲'에서 자신에 대한 목격담을 읽은 적이 있다. 글쓴이는 최 씨가 잘생겼다며 누군지 알고 싶어 했다.

최현석 씨는 "다음 수업 때 어떻게 하고 가야 하는지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수업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 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 씨는 "다만 글쓴이 입장에서는 용기를 낸 것일 수도 있다. 이 정도 글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밝혔다.

일부 대학 대나무숲은 필터링 규정을 통해 '흥신소 글'을 규제한다. 세종대 대나무숲은 '학과 혹은 이름이 노출되는 제보는 일부 자음 처리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고려대 대나무숲도 '흥신소 글'을 업로드 대상에서 제외한다.

한성대 대나무숲은 '제보 작성자나 글 대상 파악이 가능한 경우'에 한해 글을 게재하지 않는다.

한성대 대나무숲 관리자는 위키트리에 "이런 글은 아무리 초성으로 처리해도 결국 누군지 드러난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 이름이 언급돼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관리자는 "글쓴이가 누군가를 칭찬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쓸 수도 있다. 다만 그 글이 칭찬인지 아닌지는 당사자만 판단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관리자는 "애인이 있는데 괜히 글에 언급돼 불화가 생길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위키트리에 "대나무숲은 일종의 공론장 기능을 한다. 이곳에서 특정 개인을 찍어 외모를 평가하면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신경아 교수는 "타깃이 된 사람은 군중 앞에 노출된다. 그가 선의의 시선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괴롭힘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라고 밝혔다.

신 교수는 "특정 인물의 아르바이트 장소 등 사생활 정보가 포함된 글이 많다. 이는 사생활 침해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