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수필 하나씩 보내드림”...'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로 화제된 이슬아 작가

2018-03-30 12:30

"성실함은 특출난 재능이 없는 사람이 꾸준히 나아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월 이슬아 작가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일간(日刊) 이슬아'다. 프로젝트 이름처럼, '매일' '이슬아'(이슬아 작가가 쓴 수필)를 독자에게 보낸다. 평일 동안은 날마다 보내주고, 주말에는 쉰다. 구독료는 한 달에 1만 원. 글 한 편당 500원 꼴이다.

그녀 글은 어떤 출판사나 매체도 거치지 않는다. 오직 이슬아 작가가 그날그날 쓴 글을 독자들에게 직접 이메일로 발송한다. 독자 역시 작가에게 글에 대한 피드백을 이메일로 답장할 수 있다.

연재를 시작한 지 한 달만에 소문이 퍼졌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일간 이슬아' 후기 다수가 올라와 있다.

이슬아 인스타그램
이슬아 인스타그램

후기만큼이나 구독을 권유하는 독자도 많다. '일간 이슬아'는 아무때나 신청할 수 없다. 이슬아 작가는 일주일 정도 구독 신청을 받고 마감한다. 신청 기간을 놓친 사람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 달에는 꼭 구독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슬아 씨는 22살이 되던 2013년 '상인들'이라는 단편소설로 한겨레21의 '손바닥 문학상'을 탔다. 그녀는 27살이 된 지금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그리고, 쓰고, 내놓았다.

문화예술 분야 월간지인 '페이퍼'에서 막내 기자로 일했고 '한겨레21'에서 1년 동안 '연애인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유료 웹툰 플랫폼인 레진코믹스에 '숏컷'이라는 웹툰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벅스뮤직에 '슬짱의 말하기 듣기 쓰기'라는 노래 만화도 연재 중이다. 이 씨는 자신을 '연재 노동자'라고 했다.

지난 7일 홍대 한 카페에서 이슬아 작가를 만났다. '일간 이슬아'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했다. 학자금 대출이 2200만 원 남았는데 이걸 갚기 위해 시작했다. 동료 만화가 잇선 씨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녀는 글쓰기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왜 매일 마감이 닥쳐오는 '일간'을 택하게 됐는지 묻자 돌아오는 답변은 "무언가를 매일 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 였다.

"스스로 글에 대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렇다면 나는 '성실함'으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매일 달리기를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매일 달리다 보니 한 달이 지나자 3~5km가 달려지더라. 근육이 늘고 성장을 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성실함은 특출난 재능이 없는 사람이 꾸준히 나아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늘 어딘가에 소속돼 창작물을 생산했지만 오롯이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슬아 작가였다. 그는 어떤 매체나 플랫폼을 거칠 때면 작품 성격이 변하거나 장르까지 바뀌는 일이 허다했다고 말했다.

"독자들 반응이 좋아서 통쾌함을 느꼈다. 저는 늘 누군가 나를 고용해주길 원했고, 내 창작물은 어딘가를 거쳐야 했다. 연재 시스템의 수입구조는 열악하다. 아무런 연재처 없이도 나와 일대일 관계에서 나를 믿고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일간 이슬아'를 시작했을 때 자유롭게 내 글을 연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주 소수의 독자라도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열심히 쓸 자신이 있었다. 독자분들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슬아 작가의 수필은 거창하지 않지만 특별하다. 10~60대까지 청소년에서 장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팬층이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주제는 가족, 연인, 친구, 관계 등 다양하게 뻗어 나간다. 그중 '가족'에 대한 서사는 그녀 수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나는 그녀에게서 늘 어떤 건기를 느낀다. 도무지 여운이라는 걸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의 할머니와 나의 아빠는 닮았다.

모든 것을 지나치게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남자와 모든 것을 지나치게 별일 아닌 것으로 만드는 여자가 어떻게 그리 오래 함께 살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바로 그래서 함께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인가.

'나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길 하지 않고선 못 배기는 할아버지와 모든 이야기의 주어를 타인으로 설정하는 할머니. 이 조합은 언제나 내게 미스테리다. "

2018.03.05 '16. 미스테리 드라마' 중에서

그녀의 수필에는 아이들과의 체험도 녹아 들어있다. 이슬아 작가는 20대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늘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그중 하나가 현재까지 5년째 하고 있는 글방이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얻고 배운다고 했다.

"김지온 다음으로는 열세 살 기세화가 내게 원고지를 들고 왔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무이함을 이렇게 증명했다.

'내 유일무이함을 찾기란 힘들다. 그렇지만 나 기세화는 우리 반 어떤 애의 비밀을 유일하게 들은 사람이다. 어제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올라갔을 때 그 애가 울면서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은 비밀이어서 여기에 쓰지는 않겠다.'

글은 그렇게 끝이 나 있었다. 나는 나보다 세 배는 우아한 열세 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특별해지거나 흔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너무나 힘이 세서 우리를 그 이야길 듣기 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비밀들은 대부분 그런 속성을 가진 것 같았다. 그녀가 쓰지 않았으니 나는 그 비밀이 뭔지 결국 알 수 없다. 나는 아는 일보다 모르는 일이 많아서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만큼이나 우아한 사람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다."

2018.02.14 '3. 유일무이' 중에서

성황리에 첫 달 연재를 끝낸 '일간 이슬아'가 얼마 전 두 번째 연재를 시작했다. 첫 달 연재를 하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차갑고,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고 이슬아 작가는 말했다.

"잘될지 안될지는 알 수 없다. 아이유가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다. '제가 포켓몬도 아니고 매번 진화할 수는 없다'고.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비범한 작품을 내놓겠다는 다짐보다는 '내가 오늘 이만큼밖에 못 썼지만 내일은 더 잘해보겠다'라는 마음으로 매일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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