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글씨를 급하게 써요.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또박또박 써봐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를 손글씨로 쓴 기자에게 최재만(56) '바른글씨' 대표는 주저 없이 쓴소리를 했다. 학창 시절부터 엉망이었던 글씨는 어른이 돼서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최 대표는 13년 동안 악필 교정 강의를 하면서 숱한 악필을 봤다고 했다. 그는 글씨 교정을 부탁한 기자에게 "글씨 쓰는 속도가 너무 급하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언론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왠지 모르게 글씨를 빨리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러다 보니 글씨가 정확하지 않고 소위 말하는 '휘갈겨 쓰는' 나쁜 습관도 생겼다.
지난달 20일 경기도 용인시 '바른글씨' 사무실에서 만난 최재만 대표는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 글자를 쓰더라도 천천히 정확하게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기본적인 부분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최 대표는 기자 글씨에 대해 '접필 불량'과 '잔선 불량'을 지적하기도 했다. 접필 불량은 글자 획과 획 이음새 연결 부위가 떨어져 있는 글씨다. 잔선 불량은 글자 획과 획 이음새에 불필요한 선들이 남아 지저분하게 보이는 글씨다. 두 가지 모두 글씨를 또박또박 쓰지 않을 때 나타난다.
이번에는 '위키트리'를 손글씨로 쓰자 이곳저곳에 빨간 펜이 그어졌다. 역시 글자가 정확하지 않고 접필 불량, 잔선 불량이 있다고 지적받았다.
최재만 대표는 낙담한 기자에게 "물론 글씨를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악필은 아닌 것 같다"며 위로를 건넸다. 최 대표는 "악필은 남들이 알아볼 수 없는 글씨"라며 "기자 글씨는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라며 말했다. 그러면서 최소 두 달은 글씨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최재만 대표는 "노력하면 누구든지 글씨를 교정할 수 있다. 나이는 상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글씨 교정에 필요한 시간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성인이나 고등학생은 한 달에서 두 달, 중학생이나 초등학생은 넉 달에서 반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최 대표는 글씨 교정 첫 시작으로 '글씨 높낮이'와 '글씨 크기'를 일정하게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높낮이와 크기가 제각각인 글씨는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때 접필 불량과 잔선 불량이 생기지 않도록 글자를 또박또박 써야 한다고 했다.
최 대표는 "글씨 높낮이 연습은 밑줄이 있는 노트로 하는 게 좋다. 밑줄에 딱 맞춰 글씨를 써가면 된다"며 "하지만 밑줄이 없는 노트는 글자 교정에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글씨 크기 연습은 원고지를 구입해 하면 된다"며 "네모 칸에 글씨를 꽉 차게 써가면 된다"고 했다.
"글씨 연습할 때 권장하는 글씨체가 있냐"는 질문에 최 대표는 "고딕체로 쓰는 게 좋다"며 "고딕체로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힘을 주면서 글씨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나중에는 자신만의 글씨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했다.
최재만 대표는 글씨 교정을 위해서는 필기구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야 한다고 했다.
최 대표는 "글씨 연습을 할 때는 볼펜이나 샤프 등 평소 쓰는 필기구로 해라"며 "다만 연습 효과를 위해 몇가지 선택 기준이 있다"고 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심이 굵은 샤프, 고등학생과 성인은 일명 국민 볼펜으로 불리는 '모나미 153 볼펜'을 각각 추천했다.
최 대표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경우 연필로 글씨 연습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며 "연필은 쓸수록 굵기가 달라진다. 글씨 굵기가 일정하지 않으면 글씨 교정에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필보다는 글씨 굵기가 일정한 샤프를 추천한다"며 "글씨 교정을 할 때 힘을 일정하게 줘야 또박또박 글자가 정확하게 써진다. 힘을 주면서 글씨 연습을 하다 보면 0.5mm 사프는 심이 잘 부러진다. 잘 부러지지 않는 0.7~0.9mm 샤프가 더 좋다"고 했다.
최 대표는 "고등학생이나 성인은 평소 연필이나 샤프보다 볼펜을 주로 사용한다"며 "해당 연령대에는 볼펜 중에서 '모나미 153 볼펜'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볼펜은 일명 '미끄럼 현상'이 있다. 그래서 다른 볼펜에 비해 손에 힘이 더 들어간다"며 "자연스럽게 일정한 힘을 주면서 글씨를 쓰는 습관을 들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최재만 대표는 올바른 필기구 잡는 법과 앉는 자세까지 보여줬다. 엄지와 검지로 필기구를 나란히 잡고 중지로 필기구를 받치면 안정감 있게 글씨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앉는 자세는 배를 책상에 바짝 붙이고 허리는 살짝 굽히면 장시간 글씨를 써도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최 대표는 "학교 다닐 때 배워 익히 알려진 내용이지만, 글씨를 쓰면서 필기구 잡는 법과 앉는 자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재만 대표는 성격이 글씨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급하지 않게 글씨를 써야 바른 글씨가 나온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성격이 급하면 악필이 될 가능성이 있다. 글씨를 빨리 쓰려다 보면 엉망이 되기 쉽다"며 "보통 성격이 급한 사람 글씨는 끝부분을 휘갈겨 쓰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다혈질 성격을 지닌 사람 글씨도 고르지 않다"며 "이런 사람들 글씨는 매우 딱딱하게 보인다. 직선이 강조된 경직된 글씨"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재만 대표는 16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은퇴한 뒤, 2004년부터 글씨 교정 강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글씨 때문에 고민하던 자녀에게 '글씨 잘 쓰는 법'을 알려준 게 계기가 됐다고 했다.
최 대표는 "아들이 3명인데 둘째 아들이 '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데 어떡하냐'고 하소연했다"며 "아들 글씨를 봐주면서 글씨 교정 틀을 만들었고 강사 일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2006년 한글 자음과 모음에 각각 교정선을 그려넣어 따라 쓸 수 있게 한 '글씨 교정 틀'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자음과 모음 위치와 크기를 올바르게 잡아주는 틀이라고 했다. 이를 토대로 2007년부터 글씨 교정 교제들을 출간해왔다.
그는 경기도 안양시 연현중학교, 남양주시 어람중학교 등에서 방과후학교 글씨 교정 강의도 했다. 현재는 용인시에서 '바른글씨'라는 이름으로 글씨 교정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는 자택 근처인 죽전1동 주민자치센터에서 한다고 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키보드로 글씨를 쓰는 시대, 손글씨를 잘 쓰는 게 왜 중요한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최재만 대표는 10~20대 젊은이에게 이런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손글씨에는 그 사람의 정성과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요. 손글씨 잘 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 마음을 흔들 수 있어요. 연애할 때도, 자필 시험을 치를 때도, 직장 생활할 때도 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죠. 정성을 담아 또박또박 쓴 예쁜 손글씨가 선사하는 마법 같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