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부도시 브라이턴에서 끔찍한 인종차별과 폭행을 당한 피해자 김예성 씨가 직접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난 18일 영국 서식스 대학교 국제관계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예성(21) 씨가 현지에서 위키트리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인터뷰에서 김예성 씨는 지난 15일 영국 남부 도시 브라이턴에서 겪었던 경험에 대해 증언했다.
◈ "인종차별 행위에 이어 샴페인 병으로 폭행까지" 사건 전말
김예성 씨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각) 밤 10시쯤 영국 브라이턴 도심에 있는 한 대로변에서 일어났다. 예성 씨는 일과를 마치고 우연히 만난 일본인 친구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던 중 집 근처 일식집 앞에서 가해자 일행을 처음 봤다. 당시 영국 남성 2명과 여성 2명은 식당 의자와 테이블을 가져가려 하면서 일식집 사장과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싸움의 불똥은 예성 씨에게 튀었다. 김예성 씨는 "(그들이) 일식당 사장과 실랑이를 마친 뒤 저를 발견하곤 시비를 걸었다"고 전했다. 무시하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그들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맥주병을 예성 씨 뒤통수에 던졌다고 한다.
병에 맞은 예성 씨가 뒤를 돌아보자 가해 남성은 "내가 그랬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예성 씨가 "왜 던졌어?"라고 묻자 가해자 일행은 예성 씨 일행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시작했다.
예성 씨는 "현지 법이 이민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애써 싸움을 피하고자 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예성 씨가 집쪽 방향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리자, 가해자 일행은 예성 씨 앞길을 막아 섰다. 가해 남성은 "왜, 너 나 때리고 싶잖아, 빨리 때려"라고 도발했다고 한다.
가해자 일행은 인종차별 행위를 시작했다. 일부는 귀를 잡아당기고 혀를 내밀며 원숭이를 묘사했고, 일부 일행은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찢었다. 이는 서양인들이 눈이 작은 동양인을 조롱하는 행위다.
가해자 친구들은 싸움을 부추겼다. 당시 가해자의 남성 친구들은 "1대1로 싸우는 건데 괜찮지 않냐, 빨리 싸워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같이 있던 가해자의 여성 친구 역시 가해자에게 "싸워봐, 싸워봐, 쟤 얼마나 하나 보자"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거들었다. 그들은 "아시아인과 영국인의 UFC 경기다"라면서 "싸워봐, 싸워봐"를 연이어 외쳤다고 했다. 예성 씨는 "'이게 정녕 사람들인가?' 속으로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이미 많은 행인이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예성 씨는 "그러지 마라"면서 싸움을 피했지만 만취한 가해 남성은 들고 있던 샴페인 병으로 예성 씨 얼굴을 가격했다. 예성 씨는 "처음에 맞자마자 앞이 안 보였어요"라면서 "이후 눈을 뜨고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는데 이 조각이 후두두 떨어졌어요"라고 전했다. 예성 씨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가해자 일행 5명은 모두 도망가고 있었다고 한다.
◈ "폭행 영상 확보에서 응급실까지" 사건 직후 조치
싸움을 종용하던 행인들은 정작 예성 씨가 폭행을 당하자 자신이 찍은 동영상을 주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하지만 수 시간 이후에 받아본 영상에서는 가해자 일행과 행인이 싸움을 종용하고, 자신을 조롱하는 모습이 모두 편집된 상태였다고 한다.
사건 직후 인근 영업장 사장이 예성 씨를 응급처치하고 경찰 신고를 도왔다. 현지 특성상 30분이 지나서야 도착한 경찰은 사건을 파악한 뒤 예성 씨를 인근 병원으로 데려다줬다.
예성 씨는 "병원에서 3시간을 기다리고 새벽 2시가 돼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응급처치조차 해주지 않고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라고 전했다. 이후 진단서를 끊어 달라는 예성 씨 요구에 병원 측은 "경미한 머리충격"이라고 써 줬다고 한다.
◈ 진단 결과 "이 10개가 흔들리고 하나는 부러지고, 얼굴뼈 금이 가거나 부러진 듯"
사건 다음날 예성 씨는 런던에 한 치과를 찾았다. 의사는 "이 10개가 흔들리고 하나는 제대로 부러져서 신경이 노출된 상태"라고 진단결과를 전했다.
이튿날 다녀온 또 다른 치과에서 예성 씨는 인중뼈가 흔들리는 것도 확인했다. 그 자리에서 의사는 "얼굴뼈가 금이 가거나 부러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의사는 예성 씨가 응급실을 다녀갔던 도시병원 성형 전문 외과에서 예성 씨 뼈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치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예성 씨는 현재 비싼 치료 비용과 복잡한 병원 수속 절차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으로 떠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비자 신청 차 영국 비자국에 여권을 제출한 터라 한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끊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예성 씨는 "어제 다녀온 치과는 치료 없이 상담만 받았지만 30만 원이 들었다"면서 "지인에게 물어본 결과 CT를 촬영하는 데는 150만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 경찰 측 늑장대응... 폭행 당한 아시아인 두 명 더 있어
예성 씨는 경찰의 늑장 대응 문제도 지적했다. 경찰은 출동 당시 "잡히는 데 오래 걸릴 거다. 못 잡을 수 있다. 사건이 너무 많아서 미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예성 씨는 영상과 증인을 포함한 수사단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늑장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예성씨는 사건 직후 담당 형사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현재까지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답답한 심경에 직접 현장 수사에 나선 예성 씨는 뜻밖에 피해자 두 명을 더 발견했다. 가해자 일행이 시비를 걸었던 일식집 사장님과 1시간 동안 얘기를 나눈 결과, 예성 씨는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인 사장 역시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성 씨가 SNS상에 관련 사실을 알린 이후에 중국인 친구 한 명이 추가로 피해 사실을 알려왔다. 중국인 친구는 자신이 사건 당일 버스 정류장에서 같은 무리에게 폭행 당한 사실을 전했다고 한다.
예성 씨 말에 따르면 사건 당일 가해자는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등 세 명의 아시아 인을 폭행했다.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국 관계자는 "영국 현지 대사관에서 사건 당일 피해자 신고를 받아 경찰서에 조속한 수사를 요청한 상태다"라면서 "19일(현지시각) 대사관 직원이 브라이턴 현지에 방문해 피해자와 현지 경찰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영상 편집 - 김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