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아
하긴 그래도 여전히 몽둥이질은 좋더라
샤프란보다 표백 빨랫비눌 더 좋아해
또 뭐더라 바게스 안에 빨랫감들
천연덕스럽게 "스물다섯, 이제 살림할 나이"라고 외치는 남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김영빈(26) 씨다. 김영빈 씨는 아이유 신곡 '팔레트'를 '빨래터'로 개사해 불렀다. 이 영상은 페이스북 '좋아요' 1만 개, 유튜브 조회 수 60만 개를 넘기며 SNS에 퍼졌다. 재밌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김영빈 씨는 '데블스 TV' 이사다. '데블스TV'는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한 온라인 예능 채널이다. 페이스북 구독자가 7만여 명이 넘는다. 각종 패러디와 실험 영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김영빈 씨는 SNS '글쟁이'이기도 하다. 그는 종종 개인 계정에 사회 이슈를 다룬 글을 쓴다. 신기하게도 쓰는 글마다 '핫플'이다.
김영빈 씨는 네티즌과 초면이 아니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전설의 레전드'라 불리는 '서현 동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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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눈이 높은 편인디 나가 좋아했당께! 이뻐 가는! 고백이요? 나가 마음이 여려갔고, 끙끙 앓다가 가부렸지, 이제 졸업해부렸어. 몰라 나도! 인사도 못 했어요! 너무 떨려서! 서현아! 내가 너 좋아했단 거 알아두고...이거 방송 나가는 거 아니여? 몰라 몰라"
2010년 2월 9일, 전주예술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이날 학교 앞은 재학생이던 소녀시대 멤버 서현(서주현·당시 19살)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로 붐볐다. 이때 김영빈 씨(당시 전주예고 3학년)가 취재진 앞에 나타났다. 김영빈 씨는 다짜고짜 서현을 찬양했다. 전라도 사투리를 살려 서현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해당 영상은 순식간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7년이 흘렀다. '서현 동창'에서 SNS 스타로 변신한 김영빈 씨를 만났다. 김영빈 씨와 나눈 대화다.
기자 : '서현 동창'으로 유명해졌다. 그 영상 어떻게 찍혔나.
영빈 :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서현이 때문인지 방송국 관계자가 많이 왔다. 마침 tvN에서 친구를 인터뷰하더라. 그 애가 말하는 와중에 끼어들었다. 서현이가 인기 많았냐는 질문에 끼어들어 "인기 짱이었죠, 나도 좋아했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영상이 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설' 꼬리표가 붙더라.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하다, 서현 동창이 아니라 삼촌인 줄 알았다" 등. 이상하고 웃긴 캐릭터로 소비됐다.
기자 : 서현과 친했나?
영빈 : 아니. (웃음) 전주예고가 연예인 출석을 인정해준다. 서현이는 단지 그 이유로 전학 온 거다. 학교에서 많이 못 봤다. 개인적인 대화도 거의 못 해봤다.
기자 : 서현도 당신 존재를 알까.
영빈 : 지금은 알 수도 있다. 영상이 너무 많이 퍼졌다. 서현이와 함께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고등학교 동기가 있다. 그 친구가 서현이에게 내 얘기를 했다더라. 이름은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기자 : 하긴 잊을 만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 '전설의 레전드 서현 동창' 영상이 올라온다. 요샌 다른 쪽(?)으로 주목받던데? 다음 대형 카페에 '서현 동창 페이스북 글 모음'이라는 글이 돌아다닌다. 페미니즘 이야기도 있더라.
영빈 : 지난해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그때부터 관련 모임도 나가고 공부를 조금씩 했다. 여성 혐오, 여성 대상화를 인지하고 반성하는 글을 많이 썼다.
기자 : 지난 3월 위키트리에 당신이 쓴 글이 소개된 적이 있다. 남성으로 태어나 자라며 가부장제에 체화된 모습을 반성하는 글이었다. 그때 악플도 달렸다. "서현 팔아먹는다"라든가.
영빈 : 난 예전부터 '서현 동창'으로 유명했는데 처음엔 악플이 없었다. 회사를 만들고 수익을 내는 과정에서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일차적으로는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부당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 영상 즉흥적으로 찍힌 건데. (웃음) 근데 페미니즘 글을 쓰면 악플이 더 많이 달린다.
기자 : 요즘 가장 눈여겨보는 페미니즘 이슈는?
영빈 : 일부 남성 BJ가 모 여성 BJ를 살해 협박한 사건을 봤다. 그거 보고 잠을 못 잤다. 가슴이 답답했다. 너무 괴로웠다.
기자 : BJ 사건이 특히 본인에게 많이 와닿았던 이유가 있나.
영빈 : 아무래도 내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아프리카 여성 비제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온라인에서 얼굴을 팔아 장사를 하는 입장이다. 같은 업계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그래서 이입이 됐지.
요 몇 달 글을 많이 안 썼다. 글을 쓸 때마다 댓글이 달리고 거기에 일일이 반응하는 과정이 힘들고 피곤했다. 이번 BJ 사건을 접하고 난 뒤부터는 뭐라도 해야 하나 싶더라. 견딜 수가 없어서. 난 영상 크리에이터지만 내 독자들은 내 글에 대한 소비 욕구도 분명히 있다.
기자 : 위키트리에도 해당 남성 BJ 살해 협박 사건에 대한 기사가 몇 건 올라왔다. 독자 반응이 극과 극이다. 우선 여성 BJ를 살해 협박한 남성 BJ들을 규탄하는 의견이 있다. 다른 한쪽은 여성 BJ가 평소 혐오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문제 삼는다.
영빈 : 맞다. 그 여성 BJ는 소수자나 약자를 공격한 적 있다. 불편할 수 있지. 다만 그게 살해 협박 명분이 될 수 있나?
나 포함 수많은 남성 BJ와 남성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떠올려 보자. 여성 혐오를 비롯해 각종 혐오 발언을 일삼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누가 그들에게 살해 협박을 하나. 남자와 여자 사이에 젠더 권력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이런 (남녀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해 못 하니까 "남성 BJ들이 여성 BJ 살해 협박을 했다"는 얘기에 앞서 "여성 BJ가 '남혐'했다" 얘기부터 나오는 거다. 솔직히 '남성혐오'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할 말 많은데.
기자 : 혐오 담론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여성 혐오'라는 말 어떻게 생각하나.
영빈 : 우리 사회는 가부장 사회다. 여성 혐오를 인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지난 27년간 한국에서 남자로 살면서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혐오를 많이 했다. 남자든 여자든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자기도 몰랐던 혐오를 찾아내고 검열하며 시작한다.
'여성 혐오'는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여성을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존재로 보는 태도가 곧 여성 혐오다. 여자가 시끄러우면 "여자가 뭐 이렇게 시끄러워!"라고 말한다거나. 이런 말 하나하나. (웃음)
기자 :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굉장한 듯하다. 본업이 영상 크리에이터인데 영상 작업과 결부시킬 생각도 있나?
영빈 : 내가 여성학자나 젠더학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다. 대단한 내용을 할 순 없겠지만 중요한 건 젠더 이슈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아닐까. 기본적인 개념만으로도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최근에는 페미니즘 소재 토크쇼도 생각해봤다. 단 '지금 당장' 할 생각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게 많은 팬(구독자)을 확보하는 거다. 그래야 영향력이 생긴다. 서두르면 안 된다. 천천히 갈 거다.
아무래도 페미니즘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타인을 계몽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내 목적은 그게 아니다. 남을 계몽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약자를 혐오하지 않고, 윤리적인 콘텐츠 제작에 힘쓰는 모습을 보일 생각이다.
기자 : 영상 만들 때 윤리적인 부분을 많이 고려하나.
영빈 : 최근 몰래카메라 예능을 시작했다. '낚시왕 김낚시'라는 프로그램이다. 지나가는 시민을 상대로 재밌는 실험을 하는 영상이다. 예를 들면 홍대 한복판에서 유명 연예인인 척하면서 사람들 반응을 보는 거지. 반응이 아주 좋다. 다만 형식이 몰래카메라라서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몰래카메라를 나쁘게 활용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촬영 때 시민에게 동의를 구했다. 영상에 일부러 동의 구하는 모습을 넣었고. 남에게 불쾌감을 안 주면서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기자 : 일부 BJ 보면 몰래카메라를 나쁘게 활용하더라. 지나가는 여성 몸매를 품평한다거나. 그런 점에서 당신 노력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영빈 : 현재 '낚시왕김낚시'를 8화 정도 제작했다. 이 방송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기면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는 형태로 발전시킬 생각이다. 시작은 가볍게 가고 중간부터 조금씩 메시지를 담는 거지.
지금 '처음 본 사람에게 외모 평가하지 않기'라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외모 평가를 습관적으로 한다. 첫 만남에서도 외모 평가를 한다. 나쁜 의도로 하는 게 아닐 때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 그걸 무례하게 느낄 수도 있다. 사람을 만날 때 외모 대신 다른 걸 칭찬하면 어떨까. 그 사람 태도, 리액션, 목소리 같은 건 어떨까.
아, 독거노인이나 청년 문제도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풀어내고 싶다. 지역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기자 : 그러고 보니 광주를 기반으로 만든 콘텐츠가 많더라. 지역 어르신과 하는 작업도 많고. '데블스 TV'가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은 많은데 지방은 그렇지 않으니.
영빈 : 기존 미디어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다면 우리는 똑같이 광주를 다룰 뿐이다. 철저히 광주를 중심으로. 내가 전남 광양 출신이다. 고등학교는 전주에서 나왔고 대학은 서울로 갔다. 2014년쯤 친구 소개로 광주에 내려와 활동했다.
내가 처음부터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아니었다. 처음 광주에 와서 친해진 사람들과 거리예술팀을 꾸렸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를 극장이 아닌 길거리에서 한 거지. 광화문 시위에도 참여해봤고 세월호 유족이 있는 팽목항도 가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 풍자 퍼포먼스도 했다.
그러다 한계에 부딪혔다. 영향력이 없더라. 돈도 안 되고. 애초 의도와 달리 점점 무거워지는 듯하고. (웃음) 그때 온라인과 SNS로 터전을 옮기기로 했다. 우리가 하는 소소한 프로젝트를 영상으로 찍어 올려봤는데 파급력이 생기더라.
기자 : 그게 '데블스TV'가 된 건가.
영빈 :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마냥 웃긴 영상을 만드는 것 같지만 방향은 여전하다.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다만 지금은 영향력을 확보해야 할 시기다. 이런저런 웃긴 콘텐츠를 만드는 데 더 주력하고 있다. 우리를 어떻게 소비하든 다 괜찮다.
기자 : 얘기를 들어보면 당신도 '연예인' 같다. 영상도 만들고 글도 쓰고 이것저것 하는데 뭘 해도 파급력이 세다.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바깥엔 당신을 어떻게 소개하나.
영빈 : 공식적으로는 '데블스TV' 이사로 돼 있다. 크리에이터나 '페북 스타'로도 불린다. 근데 난 대중이 원하는 대로 소비되고 싶다. 그냥 '웃긴 애'로 알고 있어도 좋다.
'파급력' 얘기가 나왔는데 그 부분은 고민이 많다. 일단 내가 영상을 만들거나 글을 썼을 때 파급력이 큰 건 맞다. 근데 아까 얘기한 여성 혐오하거나 남 괴롭히는 콘텐츠 만드는 남성 BJ들 보면 나랑은 비교가 안 되게 구독자와 팔로워가 많던데? 어마어마하더라. (웃음)
그런 애들 보면 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난다. 하는 행동이 너무 더럽다. 근데 마음 한쪽에선 두려움도 생긴다. 엮이는 순간 무슨 피해를 볼지 모르니까. '나한테 찾아오면 어쩌지!' 이런 생각도 했다.
기자 : 솔직하다.
영빈 : 이쪽 미디어를 소비하는 주 연령대가 10대에서 20대다. 그런 BJ들이 게네 입맛에 맞는 자극적이고 재밌는 콘텐츠를 나보다 더 잘 만들겠지. 그러니 소비 욕구도 높을 거고. 하지만 그들을 싫어하는 대중도 있다. 딱히 반응하지 않을 뿐이지.
내 생각은 확고하다. 약자를 혐오하고 괴롭히는 콘텐츠는 더 나오면 안 된다. 혐오 콘텐츠를 제재할 윤리적, 상업적 기반이 필요하다. 그게 잘 구축돼 있지 않으니 내가 뭐라도 하고 싶은 거지.
기자 : 그들과 반대로 좋은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인가.
영빈 : 음. "나는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어요!"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면 조금 무겁지 않을까. 그냥 콘텐츠 만들면서 약자를 혐오하지 않도록 계속 조심하고 고민하려고. 그러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겠지.
기자 : 기대된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영빈 : 독자가 우릴 어떻게 소비하든 다 받아들일 생각이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안고 가야지. 계속 지켜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