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맥주 별로..." 젊은층에 부는 '수입 맥주' 열풍

2017-08-11 11:10

주류 업계에서는 술을 가볍게 즐기는 젊은층 음주 문화가 수입 맥주 열풍을 몰고 왔다고 보고 있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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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한다래(여·27) 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맥덕(맥주 덕후)'이라고 불리는 애주가다. 평일에는 집에서 '혼술'을 즐기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맥주를 곁들인다.

'맥덕' 한다래 씨가 그래도 안 마시는 맥주가 있다. '국산 맥주'다. 맛이 없어서다. 한 씨는 "맥주라면 라거든 에일이든 가리지 않지만, 국산 맥주는 좀 그렇다"고 했다. 그는 "수입 맥주만 마신다고 하면 '허세다', '힙스터병에 걸렸다'고 하는데 과한 해석이다. 수입 맥주가 더 맛있으니까 마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수입 맥주가 젊은층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6년 수입맥주 반입액은 전년 대비 약 30% 늘어난 1억 8158만 달러(2073억원)다. 규모로는 22만 556톤에 달한다.

마트에서 판매되는 수입맥주 품목도 1년 사이 200여 종에서 500여 종으로 늘어났다. 올해 1월 들어 CU, GS25,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3사 월별 맥주 매출에서 수입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롯데마트는 생수와 수입맥주 매출 비율이 100대 124로 처음으로 수입 맥주가 앞섰다고 지난 6월 밝혔다.

국내 주류업계에서는 현행 주세법이 수입 맥주에 유리한 구조라는 불만이 나오지만 소비자들은 국산 맥주가 주류 문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 "요즘 누가 '부어라 마셔라' 하나요? "

tvN '혼술남녀'
tvN '혼술남녀'

주류 업계에서는 술을 가볍게 즐기는 젊은층 음주 문화가 수입 맥주 열풍을 몰고 왔다고 보고 있다. '부어라 마셔라'하며 취하도록 마시는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술의 맛과 향 자체를 즐기는 젊은 소비자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혼술'을 즐긴다는 대학생 정윤영(여·25) 씨는 "시간도 있고 체력도 받쳐줘야 '부어라 마셔라'도 할 수 있다"라며 "과로 사회 아니냐. 학점 관리, 알바, 취업 준비 등으로 바쁘다 보니 술을 마시고 싶으면 집에서 혼자 마시고 빨리 자버린다"고 말했다.

정 씨는 "여러 명이 함께 마실 때는 '술자리 분위기'가 중요하겠지만 혼자 마시다 보니 아무래도 맛과 향을 더 중시하게 된다"며 "국산 맥주는 풍미가 떨어져 '맛'과 '향'을 즐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정윤영 씨처럼 '혼술'을 즐기는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편의점 수입 맥주 매출도 급등했다. 올해 상반기 편의점 CU 수입 맥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나 늘었다.

류강하 디플롬 비어소믈리어 겸 브루마스터는 "과거 맥주 문화는 '2차 문화'와 '피처 문화'였다. 1차에서 고기 등 무거운 음식을 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2차에서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 함께 피처로 맥주를 시켜 마셨다. 그러다 보니 맥주 본연의 맛보다는 '시원함', '청량함'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류강하 브루마스터는 "최근에는 '1차'로 자리를 끝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맥주의 맛, 향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 또는 둘셋이 맥주를 마시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맥주에 개인 취향도 많이 반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맥주도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야죠"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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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맛과 향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적 상황' 아래서 '국산 맥주'는 맥을 못 추고 있다. 국산 맥주가 맛없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니엘 튜더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이 2012년 쓴 '한국 맥주가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칼럼이 논란이 되면서 '한국 맥주는 맛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수입 맥주만 마신다고 밝힌 한다래 씨도 "국산 맥주는 하나같이 물을 탄 것처럼 밍밍하다. 폭탄주용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국산 맥주가 '재료를 너무 아껴' 맛이 없다고 한다. 맥주는 물, 맥아(몰트), 홉, 효모를 섞어 만드는데 이중 맥아와 홉이 맥주 맛을 크게 좌우한다. 국산 맥주는 수입 맥주에 비해 맥아 함량이 낮다.

국내 주세법은 맥아 함유량이 10% 넘으면 맥주로 인정하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 다른 잡곡을 섞을 수 있다. 또, 탄산을 많이 넣기도 한다. 반면 일본은 맥아 함량이 66.7%를 넘어야 맥주로 분류하고 독일에서는 맥아 함량 100%만 맥주로 인정한다.

맛 뿐 아니라 '다양성' 측면에서도 국산 맥주는 열세에 놓여 있다.

김동완(남·28) 씨는 "3년 전 독일로 교환학생을 갔다가 독일 마트에 갔는데 맥주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새로운 맥주를 한 캔 씩 사다가 맛보기 시작했는데 끝이 없더라"라고 회상했다. 이어 "맥주도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국산 맥주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독일 맥주들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맛이었다. 그래도 특징이 뚜렷해 맛과 향이 기억에 남는다"며 "국산 맥주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는 않지만 그만큼 개성도 없다"고 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국내 맥주 업계들도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수입 맥주 열풍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3년 전만 해도 맥주 신제품은 1~2년에 한 번 출시됐는데 최근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가격이 전부는 아닌데..."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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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맥주 업계는 현행 주세법이 수입 맥주에 유리하다는 불만을 제기한다. 현행 주세법에 따르면 국산 맥주나 수입 맥주 모두 주세율은 72%로 같지만 세금을 붙이는 기준인 과세표준이 다르다.

수입 맥주는 수입원가에 관세만 더한 가격에 세금을 매기지만 국산 맥주는 판매관리비, 영업비, 마케팅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한 출고 가격에 맞춰 세금을 매긴다. 국산 맥주에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는 셈이다.

국내 맥주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국산 맥주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한다. 여기에 수입 맥주 4캔을 묶어 만 원에 판매하는 프로모션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수입 맥주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주세법을 개정한다고 해서 국산 맥주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젊은 소비자들은 맥주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가격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한다래 씨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가장 큰 낙인데 맥주를 고를 때마저 가격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동완 씨는 "국내 맥주 업계들이 신제품을 계속 출시하는 걸 보면서 속상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며 "다양한 국산 맥주를 즐기고 싶다"고 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국내 수제 맥주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건 아주 반가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맥주 수입업체 제이앤제이브루어리 신상철 전무는 "많은 맥주 소비자들이 맥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다. 입맛도 점점 고급화하고 있는 추세"라며 "가격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저렴한 가격이 곧 '경쟁력'이라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별 수입 맥주 판매 순위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

1. 아사히 1. 아사히 1. 칭다오

2. 호가든 2. 하이네켄 2. 아사히

3. 칭다오 3. 칭다오 3. 하이네켄

home 박수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