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위인들이 남긴 '확 깨는' 발언 6가지

2017-05-12 12:00

인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위인이라도 허물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라서다.

인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위인이라도 허물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라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역사 속 위인들의 '확 깨는' 발언 6개를 소개한다. 확 깨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대중에 알려진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언행을 했거나, 요새 기준으론 옹호하기 힘든 사상, 인물, 단체를 호평해서 등이다.

1.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인권이 없다. 그러므로 교육을 시킬 필요도 없으며, 정치에 참여시켜서도 안 된다" - 장 자크 루소

장 자크 루소 / 이하 Wikimedia

루소(Rousseau·1712~1778)는 '사회계약론', '에밀' 등 교육·사회학 분야에 무수한 명저를 남긴 프랑스 출신 교육학자, 철학자다.

루소 철학의 핵심은 '평등'과 '자유'다. 문제는 이게 남성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여혐(여성혐오)이다. 루소는 저서 '에밀' 5편에서 여성과 교육에 대해 설명하며 "여성과 남성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다르며 남성(최상위)과 동물(최하위) 사이에 놓인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여성에게는 인권이 없고, 교육을 시킬 필요도 없다"며 "정치에 참여시켜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보편적 인권을 강조한 대(大)학자도 여성을 멸시하던 18세기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 했던 셈이다.

2. "저는 백인과 흑인이 어떻게든 정치적, 사회적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한 적도 없고, 지금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 에이브러햄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꼽으라고 하면 늘 상위권에 드는 인물이 있다.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Lincoln·1809~1865)이다.

링컨은 연방국의 기틀을 마련하고, 노예제를 폐지한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된다. 하지만 노예제 폐지에는 인권적 측면보단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일각의 주장이다.

실제로 링컨은 대통령 재임 당시 '노예제 폐지론자'보다 '연방주의자' 이미지가 더 강했다. 링컨은 1831년 대통령 취임 선서에서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유지해 이를 구제하는 것"이라며 노예제도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미국 북부는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임금 노동자가 턱 없이 부족했다. 반면 미국 남부는 대부분이 경작지였다. 노예 없인 농장 운영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링컨이 "북부 노동자 계층 편입을 목적으로 노예 해방을 추진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진실은 링컨만 알 것이다.

3. "흑인, 황인 등은 열등하니 백인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전에 사라져야 한다" - H. G 웰스 (SF소설가)

H. G 웰스

허버트 조지 웰스(Wells·1866~1946)는 영국 출신 SF 소설가다. '우주전쟁',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 SF계 전설이 된 소설을 썼다. 웰스의 작품은 영화, 드라마, 만화 등 무수한 분야에서 재탄생됐다.

19세기 후반 영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우생학' 열풍이 불었다. 우생학이란 유전적 개량을 통해 우수한 인간을 양성한다는 학문이다. 1883년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Galton)이 창시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웰스는 열렬한 우생학 지지자였다. 백인을 제외한 모든 인종에 배타적 태도를 보였다. "흑인, 황인은 열등하니 백인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전에 사라져야 한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유럽은 '혐오'와 '차별'의 천국이었다. 2차 대전 영국군을 이끈 윈스턴 처칠(Churchill·1874~1965) 수상은 장애인 차별 주의자로 유명하다. 그는 내무부 장관 시절 10만 명에 달하는 장애인에게 불임 시술을 강제했다. "문제 소지가 있는 유전자를 개량한다"는 미명 아래 말이다.

4. "동물은 영혼이 없는 기계와 같아 고통을 느낄 수 없다" - 르네 데카르트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Descartes·1596~1650)는 자기 자신보다 자기가 한 말로 더 유명하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데카르트는 회의주의자였다. 모든 걸 의심했다. 그러다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존재를 찾았다. 자기 자신이다. 나는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 생각마저 내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생각과 의심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

데카르트는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는 나(정신)'와 '살아있는 나(육체)'로 구분했다. 이를 이원론(二原論)적 사고라고 한다. 데카르트는 오직 인간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동물은 아무 생각 없이 살도록 설계된 기계라고 믿었다. 그래서 동물 해부는 마취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기계라 고통을 느끼지 못 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이런 얘기를 한다면, 글쎄. 100% 동물학대범으로 몰릴 것이다.

5.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한을 품는다" - 공자 (철학자)

Pixabay

'여혐(여성혐오)'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춘추시대 학자 공자(孔子·BC 511~BC 479)는 저서 '논어' 17장에서 "유녀자여소인 위난양야 근지칙불손 원지칙원(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이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하니 "여자와 소인은 가까이하면 버릇 없고, 멀리 하면 원망해 다루기 어렵다"는 말이다.

요즘 이런 말을 했다간 엄청난 비판에 시달리겠지만, 당시엔 시대가 그랬다.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했다.

위 말에서 '소인'은 반드시 "속 좁은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옛날엔 종, 하인도 소인이라고 불렀다.

6. "카스트 제도를 인생의 법칙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속한 카스트를 탓하지 않는 게 좋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겸양의 표시" - 간디 (정치인)

마하트마 간디 / Wikimedia

인도 독립운동 상징인 마하트마 간디(Ghandhi·1869~1948)는 현지의 차별적 신분제 '카스트' 폐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카스트 최상위층 '브라만' 출신이었다.

인도 정치인 E.M.S 남부디리파드(1909~1998)이 쓴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에 따르면, 간디는 카스트 철폐를 외치면서도 카스트가 "다양한 인간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반영한 것"이라고 믿었다.

특히 카스트 최하위층인 '수드라(불가촉천민)'를 철폐하는 데 아주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 자칫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간디는 '비폭력 저항 운동'을 지향하면서도 현지 젊은이들을 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 총알받이로 보냈다. 이를 빌미로 영국에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간디는 또 '정치적 필요성'을 느끼면 기존 소신과 다르게 대중 폭동을 조장하기도 했다.

역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힘든 모양이다.

home 양원모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