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으로 내몰지 말아주세요" 고딩 트랜스젠더 BJ 유경 인터뷰

2017-02-02 16:00

유경이 직접 찍고 편집해 자신을 표현한 사진 / 이하 유경 제공 #1함민복 시인은 "모

유경이 직접 찍고 편집해 자신을 표현한 사진 / 이하 유경 제공

#1

함민복 시인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튜버 유경(김현수·17)은 누가 뭐래도 '꽃'이다.

세상이 만든 '남성과 여성'이라는 모호한 경계 사이에 오롯이 핀 꽃이다. 편견과 배척이라는 진흙 사이에서 흔들리며 홀로 피어난 꽃 한 송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시인의 노래대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남성과 여성' 이분법이 익숙한 우리에게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아직 낯설다. 세상은 유경을 남성이라고 부르지만 유경은 그런 세상에 "난 여자야!"라고 외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경계선에 위태롭게 서있는 존재가 바로 트랜스젠더다.

그래서 유경은 힘든 사춘기를 겪었다고 했다. 중학교 땐 손과 목에 수없이 자해했다고도 했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은 어린 유경이 감내하기엔 잔인했고, 유경 본인이 겪어야 하는 정체성 혼란도 끔찍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바보짓을 하지 않는다. 유명해져 트랜스젠더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 잡겠다는 꿈도 있다.

유경의 당찬 포부를 듣자 '우리 사회가 이 소녀의 꿈을 품어줄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결국 세상에 편입되지 못하고 공동체 주변을 떠도는 소수자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이 소녀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을 밀어내는 세상을 저주하지 않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힐난하는데 시간을 들이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2

제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요?

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많은 분이 '트랜스젠더' 자체에 대한 개념이 많이 없으세요. 하리수 씨가 성전환 수술 후에 연예계 데뷔하면서 '트랜스젠더=여성으로 성전환 수술한 남성'이라는 인식이 생긴 거 같아요. 그거 아니에요.

트랜스젠더는 껍데기(몸)와 정신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저를 예로 들면 사회적, 신체적 기준으로는 남성이지만 저의 정신은 완벽한 여성이에요. 이런 경우를 트랜스젠더라고 부르는 거예요. 수술 여부는 부차적인 거예요.

유경이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쓴 '미래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이미 자신을 유경이라고 지칭하며 "예뻐질 것"이라고 했다

게이가 성전환 수술하면 트랜스젠더가 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네, 전혀 아니에요. 애초에 게이는 성전환 수술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아요. 몸과 정신이 모두 남자인 채로 다른 남성을 좋아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부터 정신과 몸이 어긋난 채인 거예요. 정신이 여성(혹은 남성)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성(혹은 여성)에게 끌리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게이(혹은 레즈비언)와 트랜스젠더가 자주 혼동돼요.

세상에는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 딱 두 가지 경우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같은 맥락으로 "게이였다가 트렌스젠더가 '됐다'"는 표현도 성립이 불가능한 말이에요. 두 성향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본인이 잘못 알고 있었거나 착각한 거죠.

유경이 제작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차이점을 소개하는 영상 / 유튜브, YooKyeong 유경

이렇게 씩씩한데, 자해는 왜 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때 2차 성징이 오는 시기잖아요. 갑자기 수염이 나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어깨가 넓어지기 시작했어요.

무슨 기분인지 상상이 가세요? 나는 분명 여자인데 내 몸이 전형적인 남자로 조금씩 변해가는 거예요. 그때의 고통은 말로 못 해요. 이 글 읽게 되시는 분들도 한 번 상상해 보셨으면 해요. 자신의 몸이 이성의 몸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요.

그래서 그때 자해를 하게 된 거 같아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정말 죽으려고 했다기보다는, "내가 이렇게 힘들다"라는 걸 주위에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손목과 목에 있는 상처를 결국 학교 선생님이 알아채셨고 그때 "정신이 여자인 거 같다"고 솔직히 말하게 됐어요. 그 이야기가 결국 부모님께 전해졌고 중2 때 부모님도 알게 되신 거죠.

부모님 반응은 어땠어요?

너무 당황하셨는지, 막 횡설수설하셨어요. "너 진짜 막 수술하고 하는 '그런 거' 아니지?"라고 하셨던 거 같아요.

친구들은 언제 알게 됐어요?

제가 유튜브 방송을 중학교 3학년 때 시작했는데, 곧 전교에 소문이 퍼지더라고요. 참고로 저 남중 나왔고, 남고 다녀요.

친구들 반응은 어땠어요? 상상이 잘 안 가는데

저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에요. 제가 조금 다르다고 해서 대놓고 괴롭히거나 하는 친구들은 없었어요. 제 방송에 가끔 악플다는 같은 학교 학생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는 건 아니에요. 또래 친구들하고 관심사도 다르고요. 학교에 가면 그냥, 외로워요. 말도 잘 안 하고 그냥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외로운 거 버티면서 하루하루 시간 보내는 거예요. 일반적인 또래가 겪은 고민에 더해 끝없는 외로움이라는 짐도 더 지고 있는 셈이죠.

혹시 그래서 방송 시작한 거예요? 외로워서?

제가 처음 방송을 시작하게 된 건 '돈' 때문이었어요. 하루빨리 돈을 벌어서 수술비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조금씩 남성의 몸으로 변해가는 저 자신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반적인 경로를 밟으면 20대나 돼야 돈을 벌기 시작하는데 '그때까지 나쁜 맘 안 먹고 버틸 수 있을까?'라는 절박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죠.

그런데 방송을 계속하다 보니 저에게 "예쁘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힘내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지고요. 물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악플도 엄청나게 달리지만요.

"숨을 좀 쉬는 거 같다"고 해야 하나? 방송은 제게 생존의 문제예요. 자해를 그만둔 것도 방송의 영향이 있었어요. 누구든 삶에서 감당 못 할 고통을 겪게 되면 위로가 필요하잖아요, 그게 제게는 방송인 거예요.

그러다 요즘에는 욕심이 더 생겼어요. 저 유명해질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에 지닌 편견을 바로잡는 사회적 역할을 하고 싶어요.

심리상담 받으며 자신의 슬픔을 표현한 작품 / 이하 유경 제공

저는 유경 씨가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얼마나 벌어요?

제일 많이 번 게 한 달 20만 원 정도예요. 평소에는 뭐 5만 원이나 많아야 10만 원? 생각만큼 수익이 잘 나지 않아요.

다른 방송 플랫폼에서 방송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는데, 그것도 장비가 필요하거든요. 아직 학생이라 그럴 돈이 없어요.

제가 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고 했냐면, 유경 씨가 다른 생각하게 될까봐서이에요. 트랜스젠더가 매춘업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보도가 몇 번 있었어요.

네 맞아요. 제 또래도 그런 일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진짜로 묻고 싶어요. 세상에 자기가 좋아서 몸을 파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어요.

일부 트랜스젠더들이 매춘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걸 한 번쯤 생각해 봐 주셨으면 해요.

저는 지금도 그냥 그 부위를 가위로 잘라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참아내면서 살아요. 몸과 정신이 불일치한다는 건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에요. 그 고통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술인데, 수술에는 큰돈이 들어요.

정신과 진료부터 호르몬 치료, 수술, 사후 관리까지. 일반적인 직장인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이 필요해요. 그 돈을 구하는 건 트랜스젠더에겐 너무 힘든 일이에요.

자신을 인간이 아닌 '성 노리개'로 본다는 걸 알면서도 매춘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건 그만큼 그들의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성매매는 불법이에요

맞아요. 나쁜 일이에요. "몸 팔지 말고 어디 공장에라도 가서 일해라" 그런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공장에서 트랜스젠더를 받아 주나요? 우리 사회가 트랜스젠더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 주기는 하나요?

트랜스젠더들은 일반적인 직장을 잡기 힘들어요. 일반적인 일을 하기 싫어서가 아녜요. 사회가 우릴 밀어내요.

자기 목소리나 행동거지를 숨기고 일반적인 직장에서 정말 힘들게 일하는 분들도 분명 계시죠. 하지만 곧 눈치채는 동료가 생기고 은근히 혹은 대놓고 따돌리는 일이 자주 생겨요. 그러니 당연히 일반적인 공동체에서 적응을 못 하고 불법적인 일로 빠지게 되죠.

세상 사람들 모두가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누군가 진짜로 떨어지면 "쯧쯧, 떨어져 죽었네. 왜 나약하게 벼랑에 떨어져 죽고 그래?"라고 비웃는 거 같아요. 자기들이 죽으라고 떠밀었으면서. 제발 그러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고등학생 트랜스젠더로서 제일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다면요?

사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OMR 카드에 성별 표기할 때가 제일 힘들어요. 저는 여성인데 스스로 남성이라고 표시해야 하거든요.

OMR 카드를 앞에 두고 얼마나 많이 고민하는지 몰라요. 저 자신을 배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가끔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성 소수자들에 대해서 함부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도 힘들죠.

학교 여장 대회에 참여한 유경

같은 트랜스젠더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다고 하던데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수술·비수술 트랜스젠더 BJ분들이 많으세요. 그중 일부가 방송에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어요.

정말 몰라서 잘못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 인기를 끌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정보를 접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아! 트랜스젠더가 하는 말이니까 다 맞겠구나"하고 생각하시거든요.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는 분들이 말씀하시는 것보다 이런 경우가 더 치명적이죠.

군대에 대한 걱정은 없어요?

정말 두렵죠. 가서 훈련을 받게 되는 게 두려운 게 아니에요. 2년 동안 강제로 남성성을 강요받아야 한다는 게 정말 끔찍하게 무서워요. 성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저 같은 비수술 트랜스젠더들은 군대를 가야 해요. 정신과에서 트랜스젠더임을 확진 받아도 면제 대상이 아니에요. 고환을 적출하는 등의 외과적 수술을 받아 제 몸을 '객관적'인 증거로 만들어야 해요.

그런데 이게 얼마나 황당한 상황이에요? 19살, 20살이 무슨 돈이 있다고 수술을 받나요? 대부분 부모님에게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속이기 때문에 지원도 거의 불가능하죠. 이런 구조다 보니까 10대 때부터 매춘에 뛰어드는 트랜스젠더가 생기는 거예요.

이런 사정도 모르면서 "트랜스젠더들은 성적으로 문란하다", "군대 가기 싫어서 수술한다"는 헛소문을 재생산하는 분들이 계시죠.

성전환 수술은 정말 목숨 걸고하는 거예요. 실제로 수술 중에 많이 사망하거든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정신과에서 엄격한 진단을 받아야 해요.

혹시 연애 해 본 적 있어요?

트랜스젠더는 정상적인 연애를 거의 못해요. 하지만 저도 사람이라 짝사랑을 하게 될 때는 있어요.

음, 그런데 다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라서 선뜻 말하기는 어려운데. 제가 크게 상처 입은 게 두 번 정도 돼요.

처음엔 같은 반 친구였어요. 제가 모르는 사람들한테 SNS 댓글 테러를 당한 적이 있는데 나서서 도와준 적이 있는 아이였어요. 그 이후로 호감이 생겼지만, 저도 제 상황을 아니까 그냥 쳐다보기만 했어요. 그런데 그게 좀 티가 났나 봐요.

그 친구가 어느 날 카톡 프로필에 "쳐다보지 말고 그냥 관심을 가지지 마라. 개X신아 신고한다"라고 적어놨더라고요. 그때 정말 충격이었어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이렇게나 싫은 일이구나, 나는 혐오스러운 존재구나"라는 절망을 뼛속 깊이 느꼈어요. 그 이후로 매일 학교에서 봐야 했는데 도저히 얼굴을 못 보겠더라고요.

두 번째도 비슷한데, 제가 SNS에서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다음 날 위로해주던 친구가 있었어요. 학교 다니면서 의지를 정말 많이 하던 친구였는데. 이번에는 속으로만 좋아했죠.

그냥 카톡 프로필에 그 아이한테 하고 싶은 말을 편지 쓰듯 티 안 나게 적곤 했는데, 누군가가 그 사실을 장난스레 그 친구한테 얘기했나봐요. 제가 마침 그 주변에 있었는데 저 들으라는 듯이 굉장히 심하게 욕설을 하더라고요.

절 모르는 사람들이 욕하는 거엔 단련이 됐는데, 제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본인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성전환' 수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을 만드는 주범이에요.

성전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왜 멀쩡한 자기 성을 바꾸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에요. '성 교정' 수술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어요. 치아 교정처럼요. 치아가 뒤틀리면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교정하듯, 성교정 수술은 원래 자기 성을 찾아주는 수술이에요.

그리고 트랜스젠더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생각은 제발 접어주세요.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에요. 제게도 매일같이 음란 메시지가 와요. "너희 트랜스젠더들 문란하잖아? 한 번 하자"라는 식으로요.

사회적 맥락이나 상황도 모르면서 일부 트랜스젠더가 성매매에 종사한다고 저희를 다 그렇게 봐요. 그냥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만 돼도 정말 정말 행복할 거 같아요.

home 장순현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