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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 속에 감출 수 없는 행동" 영화 '셰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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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tlim0523
2013.09.30 17:03

[이하 사진='세임' 영화 캡처]

 
[스포일러 주의]

 
프롤로그

이 소설은 단지 섹스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본능의 지퍼를 열어 보이는 작품이다. 
지퍼 속에 페니스를 감추고 없는 듯이 행동하는 지식인 사회를 건드리고 싶었다. 
_ 소설가 박범신, 장편소설 ≪은교≫에 대한 『시사인』과의 인터뷰 중(2012.5.17)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혹은 거리에서 종종 이런 광경을 목격한다. 말끔히 수트를 차려입은 남성의 페니스 부분이 유달리 부각되어 튀어나온 모습 말이다. 즉, 발기한 것이다. 진이나 저지, 카고 팬츠 속에서의 발기보다, 수트 팬츠를 입은 상태에서의 발기는 그 곡선의 형태가 훨씬 도드라진다. 아마도 천의 재질 차이가 아닐까 싶다. 진과 카고 팬츠는 섬유 자체가 두텁고 질겨서, 페니스가 아무리 거세게 확장된다 한들 그 천에 압박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진과 카코 팬츠를 입어서는 발기의 여부가 시각적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저지는, 면 소재의 신축성 있고 얇은 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발기된 페니스의 질감이라든가 형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마치 에일리언 숙주가 사람의 뱃살을 찢고 나올 기세로 고개를 들이민 형상이랄까. 아무튼 저지를 입은 남성의 발기된 페니스는 혐오감이 이는 것이다.(그러니 저지를 입을 때는 반드시 페니스 부분까지 덮을 수 있는 박스티를 입어야 한다.)
 
수트 팬츠의 경우라면, 곡선이 아예 없는 진과 카고 팬츠나 곡선이 지나치게 선명한 저지의 중간쯤이다. 발사대 위에 올려진 로켓에 대형 실크 천을 덮어놓은 것처럼, 육중하면서도 세련된 페니스를 상상하게 된다. 만약 수트 팬츠가 검은색이라면, 그 천에 잡힌 곡선의 주름은 흡사 고급스러운 중형 세단의 외관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금요일 밤, 오피스룩의 여성과 클럽이나 바 같은 데에서 걸어 나오는 ‘맨 인 수트’는, 언제든 발진 준비가 된 든든한 엔진을 탑재하고 있는 세단 같은 것이다.
 
남성들은 성욕을 느끼면 평소의 상태보다 크기와 길이가 확장되는 페니스라는 것을 가졌다. 신체 구조상,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지금 이 순간 성욕을 느끼고 있음’을 감추기가 대단히 어렵다. 굳이 지퍼를 내리지 않아도, 그 속에 단단하고 길쭉한 구조체로서의 ‘성욕’이 매달려 있음을 쉽게 상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범신 작가의 위 인터뷰 내용처럼 “없는 듯이 행동”해야만 한다. 함부로 꺼내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영화 《셰임》은 ‘자신의 페니스를 지퍼 속에 감추고 없는 듯이 행동하기’에 매우 곤란함을 겪고 있는 한 뉴욕 여피의 이야기다. 섹스중독증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섹스 담론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이 영화는 팬츠 지퍼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지퍼를 내리려 한다. 


 
 
바흐, 포르노

주인공 브랜든(마이클 패스벤더)은 대도시 뉴욕에서 직장 생활을 해나가는 30대 남성이다. ‘잘 나간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을 다져놓은 싱글이다. 혼자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고,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며, 여러 여자들과 자유로운 섹스 라이프를 즐길 만큼 자유분방하다. 뉴욕의 전형적인 여피(YUPPIE, Young Urban Professional)인 것이다. 다만, 성욕만큼은 비전형적이다. 그는 섹스에 중독된 성욕과잉증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브랜든의 아침 기상부터 출근길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나체의 브랜든이 기다란 페니스를 덜렁거리며 화장실로 가 소변을 보고, 샤워 중엔 마스터베이션을 한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실로 거대한 페니스 크기도 꽤 인상적이지만(그리스 신화의 프리아포스를 연상시키기도..), 영화가 시작한 지 3분도 채 안 되어 남자 주인공의 벌거벗은 전신을 가감 없이 보여준 연출은 매우 강렬하다.
 
이후의 장면들에서 브랜든이 제아무리 말쑥한 캐주얼 수트를 입고 있다 해도, 관객들의 뇌리 속에선 영화 초반부에 목격했던 그 대단한 ‘물건’이 계속 떠오를 것이다. ‘저 남자의 팬티 안에는 어마어마한 페니스가 감춰져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로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브랜든은 맞은편 좌석에 앉은 한 젊은 여성을 응시한다. 망사 스타킹에 롱부츠를 신은 매끈한 다리부터, 썩 미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한 번쯤은 쳐다보게 될 법한 귀염성 있는 금발의 얼굴까지.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간밤의 섹스를 상기한다. 상대는 진분홍 란제리를 입은 흑인 콜걸이었다.
 
출근 열차의 금발 여성을 바라보는 동안, 아마도 남자의 페니스는 발기해 있었을 것이다. 여자도 남자의 눈길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이따금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흘린다. 그러나 이내 여자는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라는 듯 표정을 고쳐 짓고, 하차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전봉을 잡은 여자의 왼손에 결혼 반지가 끼워져 있다. 브랜든도 여자를 따라 일어난다. 의중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열차 문이 열리자 금발의 여자는 황급히 사라지고, 브랜든은 출근 인파들 틈에서 그녀를 놓치고 만다. 



회사에 도착한 뒤에도 브랜든의 페니스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리의 데스크톱이 없어진 걸 알자 몹시 불쾌해한다. 하드드라이브 안에 온갖 종류의 포르노 컬렉션을 저장해놓았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들에게 들킬 것을 염려하기보다는, 그 컬렉션이 전부 삭제되어 다시는 볼 수 없을까 봐 더 걱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포르노가 없다고 발기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브랜든은 일하던 도중에 화장실로 달려가 기어이 마스터베이션을 하고야 만다. 사무실에서 그의 손에는 커피잔 대신 레드불 캔이 들려 있을 때가 많은데, ‘배출’이 많은 만큼 늘 스태미너에 신경 써야 하는 그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브랜든은 턴테이블에 LP판을 걸어놓는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이다. 연주자는 글렌 굴드(Glenn Gould)다. “모차르트는 요절한 게 아니라 너무 늦게 죽었다(Mozart died too late rather than too soon.)”라고 말했던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그런 그는 쉰한 살에 죽었다. 서른다섯 살에 눈을 감은 모차르트보다는 확실히 ‘늦게’ 죽은 셈이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 브랜든은 병맥주 하나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랩탑을 켠다. 이윽고 랩탑 스피커에선 한껏 고조된 여성의 신음이 흘러나온다.
 
바흐의 멜로디와 글렌 굴드의 피아노를 배경음으로 포르노가 재생되고 있다. 브랜든은 바흐를 틀어놓고 포르노를 감상하는 남자인 것이다. 랩탑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페니스 같다. 바흐가 연주되고 있는 아파트 안에, 포르노에 심취한 성욕과잉증 남자가 살고 있을 거라는 추측은 여간해서는 하기 힘든 것이다. 점잖은 수트 팬츠 안에 오이처럼 길쭉한 페니스가 매달려 있음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영화는 초반부에 이미 남자 주인공의 전라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상상을 돕고 있는 것이다. 
 
 
발기부전

주인공 브랜든을 갈등하게 하는 요인이 두 가지 있다. 가족과 결혼. 이 둘은 ‘사회적 관습’이라는 큰 틀에 의해 하나로 묶일 수 있을 것이다. 브랜든의 섹스 라이프에 제동을 거는 사건이 바로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와의 동거다. 어느 날 귀가했는데, 여동생이 태연하게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브랜든 입장에선 예고 없이 들이닥친 재앙이다.(이제 다시는 콜걸은 부르지 못할 것이다.) 
 
씨씨는 아무하고나 쉽게 몸을 섞고(심지어 브랜든의 유부남 상사와도), 쉽게 상처받고, 인정욕 강한 철부지 소녀처럼 그려진다. 클럽의 가수인 그녀는 유일한 가족인 오빠(브랜든)가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공연을 보러 와주기를 갈망한다. 그걸 ‘진심으로’ 바랄 만큼 순수한 캐릭터인 것이다. 자신에게 모질게 구는 오빠에게 “우리는 가족이야”라며 울먹이고, 자살 기도까지 하는 여동생이다.(그녀의 손목에 그어진 여러 줄의 상흔이 말해주듯, 이미 과거에도 여러 번 자살 기도를 했었다.) 그녀의 첫 등장 역시, 그런 여리고 미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브랜든의 집에 허락 없이 쳐들어온 씨씨는, 1970년대 그룹 칙(Chic)의 ‘아이 원트 유어 러브(I Want Your Love)’를 크게 틀어놓고 샤워를 하고 있다. 의존적인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선곡이다.
 
도둑이 침입한 줄 안 브랜든은 야구 배트를 움켜쥔 채 화장실 문을 열어젖힌다. 행인지 불행인지 그 안에는 도둑이 아니라 벌거벗은 여동생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오빠 브랜든의 첫 등장과 마찬가지로, 여동생 씨씨 역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전라의 상태다. 캐리 멀리건의 몸은 성숙한 여자의 것이기보다, 이제 막 발육기에 접어든 사춘기 여중생에 가깝다. 물기 젖은 흰 피부, 작은 유방, 좁게 자라난 음모, 굴곡 없이 펀펀한 엉덩이 등의 신체적 특징이 그녀를 더욱 소녀처럼 보이게 한다.(섹시함보다는 귀여움이 돋보이는 외모 역시.) 



 
브랜든에게 여동생이란 성가신 존재다. 그의 대사처럼 “짐(burden)”이다. 어쩌면 그에게 ‘가족’이란 것이 이런 짐인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가족이 있다면 콜걸은 절대 부르지 못할 테니. 그래서일까, 브랜든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다. 호감을 느낀 사무실 동료와의 첫 데이트―물론 그 ‘호감’이란, 성욕이다―에서, 브랜든은 “요즘 같은 시대에 왜들 그리 결혼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상대 여성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현재 남편과 별거 중인 상태로, 다시 한 번 좋은 사람과 만나 진지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다. 브랜든의 독신주의가 ‘프리 섹스’에 기인한 것이라면, 여자의 결혼관은 ‘누구와 함께하느냐’, 즉 ‘사랑’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브랜든이 그녀에게 육체적 욕정을 느끼는 것과 달리, 여자는 브랜든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브랜든도 조금씩 동화되어간다. 마스터베이션 하는 모습을 여동생에게 들킨 뒤, 그는 수치심을 느꼈는지 집 안 곳곳에 숨겨놓았던 포르노 잡지와 DVD 등을 처분해버린다. 브랜든으로서는 몹시 터프한 결단이다. 사무실의 그녀로 인한 변화가 아닐까. 그러나 그 변화는 해피엔드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여자와의 첫 잠자리에서, 브랜든의 페니스는 발기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성욕과잉증 남성의 페니스가 막상 섹스의 순간에 일어서지 못하다니.
 
의기소침한 브랜든을 위로하며 여자는 먼저 호텔 방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랜든은 콜걸을 불러 격정적인 애널섹스를 즐긴다. 그는 “봐라, 내 페니스는 이렇게 잘 작동한다!”라고 과시하듯, 호텔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창에 바짝 붙어 격렬한 삽입 행위를 반복한다.
 
원나잇 스탠드 상대와 콜걸 들에게는 제대로 일어섰던 페니스가, 정작 ‘사랑’의 과정에서는 불능이다. 말하자면 브랜든은, 타인을 온전히 사랑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개인주의적 현대인의 표본이다. 요컨대 브랜든의 페니스는 욕망 배출과 남성성 확인이라는 두 가지 기능에만 국한된 것이다. 그 페니스로는 사랑을 나눌 수도 없고, 아이를 가질 수도 없다. 이런 ‘절반의 페니스’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았다.
 
그들의 지성이 돈을 벌거나 출세하는 데에는 잘 작동할지 몰라도, 다른 이를 돕는다거나 배려하는 데에까지는 기능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국격’을 높이는 정책들을 제시하고는 있으나,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들을 사랑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국가 전체의 이익(을 명분으로 앞세운 사리사욕)’이라는 욕망 앞에선 벌떡 일어섰던 위정자들의 페니스가, 막상 국민들 앞에서는 수그러드는 것이다. 또한, ‘절반의 페니스’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다. 먹고사는 일, 즉 ‘생계’라는 본능적 욕구에는 충실하나,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망각해버린 생활인들의 모습 말이다.
 
여러분은 혹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 하며 망설여본 경험이 없는지. 그런 게 바로 발기부전 아닐까. 인생의 발기부전. 



결혼반지

영화의 엔딩은 초반부와 수미쌍관을 이룬다. 출근길 지하철 안이고, 초반부의 금발 여성을 또다시 만난다. 그런데 여자의 태도가 좀 다르다. 적극적으로 미소를 짓는가 하면, 고개를 열차 문 쪽으로 까딱이며 ‘나 이번 역에서 내려요’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하차하기 위해 일어선 여자의 왼손에는 여전히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다.
 
그런 여자를 계속 쳐다보는 브랜든의 모습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여자를 응시하는 브랜든의 표정은 확실히 초반부와 다르다. 브랜든의 얼굴에서 유혹의 미소가 사라진 것이다. 그의 표정에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그 기저에는 결혼과 가족 등 사회적 관습에 대한 브랜든의 열등감이 깔려 있을 것이다. 브랜든이 결혼에 대해 얼마나 비판적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가 그의 직장 상사다. 아들과 화상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자상한 아빠이지만, 퇴근 후 어떻게든 여자 한 명을 꼬여 뜨거운 밤을 보낼 궁리를 하는 치다.
 
직장 상사는 심지어 브랜든의 여동생 씨씨와도 잔다. 그런 그가 브랜든의 사무실 데스크톱 하드드라이브에 저장된 포르노 콜렉션에 대하여 “추잡하다(filthy)”면서 주의를 준다. 브랜든으로서는 몹시 같잖았을 것이다. 게다가 결혼이나 사랑 같은 ‘가족적’인 가치관과 엮여버릴 때, 자신의 욕구 해소가 불가능해진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브랜든이다. 연애를 통해 정상적(?)으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발기하지 못한 일이나, 여동생에게 자신의 마스터베이션을 들킨 전적이 있지 않나. 그럼에도 그는 사회적 관습을 완전히 증오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 결혼, 가족에 대한 책임감 등등,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취하는 이런 가치관들을 전적으로 거부하기는 힘들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데이트 여성 앞에서 발기하지 못하자 절망한 것이고, 욕실에서 손목을 그은 여동생을 발견하자 부둥켜안고 오열한 것이다. 
 
브랜든은 사회적 관습들을 뛰어넘으려는 자다. 자신의 욕망에 경계를 그어놓는 온갖 규범들을 극복하여, 매 순간 터져버릴 것만 같은 자신의 페니스를 마음껏 펌프질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동생과 처음 만난 날 곧바로 섹스를 한 직장 상사를 나무라기는커녕 평소와 다름없이 대하는데, 이는 부러움의 완곡한 표현이 아닐까. 아내가 있건 자식이 있건 상관없이 아무하고나 성욕을 해결해버리는 유부남 상사가 미치도록 부러웠던 것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지하철이 멈춰 섰을 때 브랜든은 결혼반지의 여자를 따라 내렸을까? 내렸을 것이다. 



 
에필로그

영화배우 마이클 더글라스, 찰리 쉰, 뮤지션 에릭 베넷, 카니예 웨스트,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 각 분야에서 성공한 이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섹스중독증이었다.(찰리 쉰은 무려 5,000명의 여성과 섹스를 했다는 풍문이 있다.) 이들 문화예술계 종사자 말고도,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맨들이 매일 밤 성적 향락을 즐긴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찰스 퍼거슨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에는 월스트리트 금융 인사들을 ‘접대’했던 여성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섹스중독증 환자가 많다고 한다.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을 떠올려보라.) 이를 ‘석세스 신드롬(Success Syndrome)’이라 부른다. 그런데 실제로 변태성욕 성향이 있어 섹스중독이 된 경우보다는,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에로스화’한 사례가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참고 기사: 매일경제, 「과도한 욕망에 시달리는 남자들」) 
 
《셰임》은 어쩌면 현대 도시인들의 내면 세계를 약 두 시간 동안 펼쳐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깥의 세계가 ‘페임(Fame)’이라면, 지퍼 속 내면은 ‘셰임(Shame)’이 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실재계(세계의 끝)와 내면 세계(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두 공간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준다. 작품 안에는 자신의 그림자와 분리된 남자가 등장하는데, 이 둘은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우리도 페니스와 대화를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마도 모두의 마음속엔 프리아포스처럼 거대한 페니스가 매달려 있을 것이다. 지퍼로 잘 잠가 숨기고 있으나, 그것이 겉잡을 수 없이 발기해버리면, 마음은 터져버릴 듯 부풀어오른다. 그때마다 잠깐 지퍼를 열어보는 것이다. 마음속 페니스는 고통이 가해지면 발기하기 마련이다. 고통에 의한 발기, 즉 ‘고통의 에로스화’가 익숙해지면, 마음속 페니스는 정작 필요한 순간엔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수치스러워지지 않도록, 나의 고통이 에로스로 변태되지 않도록, 지퍼 속의 ‘셰임’을 잘 들여다보고 극복할 일이다. 

※ 본문 이미지 출처 : 예고편 캡처(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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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tlim0523
2013.09.30 17:03

jet_l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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